소개팅 관전기

PUBLISHED 2009/03/05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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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을 맞아 소개팅을 주선했다. 부끄러움을 타는 친구들을 엮어주다보니 쌍팔년도 스타일로 주선자인 내가 직접 나가 밥을 함께 먹어주어야 했다. 혹자는 주선자가 소개팅 자리에 애매하게 끼는 일은 매우 뻘쭘한 일이라며 말리기도 했다. 물론 소개팅 당사자와 같은 흥분은 없었지만, 우리가 마치 운동경기를 기꺼이 찾아가 관람하듯,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우선 나는 그동안 알고 있고, 매우 익숙했던 사람들에 대한 인식을 재인하는 기회를 얻었다.

내가 알던 Y(남)는 늘 수염이 덥수룩 하고 '편해야 옷'이라며 소방차 바지쯤 되는 것들을 즐겨입곤 했는데, 소개팅 자리에서는 완전 꽃남이었다. 또한 아는 것이라고는 술과 담배 (안마방도 매우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이자리에서는 밝히고 싶지 않다) 그리고 스타크래프가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사문철은 물론 시사, 증권, 자기계발 등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었다.

S(여)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는 수다장이로 회사 선배인 나를 마치 제 친언니로 착각이라도 한 듯 별의별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하더니 (가끔 난 그녀가 생리중이라는 사실도 억지로 인지해야 할 때도 있지만 역시 이자리에서는 민망해서 언급하고 싶지 않다.) 소개팅에 와서는 그저 실실 웃으며 거의 입을 활용하지 않았다. 앞에 평소 환장하던 치즈 해물 떡볶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거의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또 다른 즐거움...아니 깨달음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상황에 따라 표면적인 행동과 모습을 바꾼다 해도 그것이 상당히 불안해 보이고 어설퍼 보인다는 것이다. 제 3자의 시각에서 Y와 S의 새로운 모습을 관찰해 보니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뭔가 어색하다거나 앞뒤가 안 맞는다거나 너무 오버한다...생각할 수 있는 증후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상황에 대한 욕심이 만든 어설픔이 아닐까하고 혼자 생각했는데, 처음 배팅을 배운 사람이 홈런을 치고 싶어 방망이를 야심차게 휘둘러대는 모습쯤으로 보였다.

소개팅을 관전하고 나니 '나도 저렇겠지'하는 허전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울러 '현실을 제대로 본다'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물론 소개팅은 당장 확인 불가능한 기대를 상대방을 향해 향수처럼 폴폴 풍기는 게 나름의 묘미일지라도 말이다.

딸의 미소

PUBLISHED 2009/02/2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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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파트에 살며 종종 만나는 이웃이 있다. 보통 아버지, 어머니, 딸이 함께 목격되며 대부분의 경우 무척 행복해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딸은 20대 중후반 정도고, 부모님은 60대 정도다. 딸은 수수하고 이쁘게 생겼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있는 모습이 특히 많이 발견된다. 어쩌다 퇴근길에 보면 아버지는 딸을 기다리시는지 현관 앞에 나와서 담배를 태우신다. 또 출근 시간에는 딸을 항상 엘리베이터 앞까지 바라다주시며 무엇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직전에 항상 '조심하라'란 주문을 하신다.

오늘도 출근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부녀를 만났다. 그런데 오늘은 아버지가 파자마에 내복 웃도리를 입고 딸 출근을 배웅하고 계셨다. 엘리베이터에는 사람들도 많았다. 20대 아가씨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내복바람을 남들에게 보이는 것이 민망하기도 했을 텐데, 꿋꿋했다. 오히려 딸은 '내복 바람으로 아침마다 딸 출근길을 함께 해주는 아버지가 귀엽다.'는 듯한...그래서 마치 '이그 못말려~'라고 귀엽게 핀찬을 주는 듯한 미소를 아버지께 날려주었다.

딸의 훈훈한 미소를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 아가씨 참 효녀네."

말 잘하는 비법

PUBLISHED 2009/02/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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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 정도 어떤 스터디 그룹을 함께 한 적이 있었다. 9명이 모인 조촐한 자리였다. 한 가지 주제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강의실에 올망졸망 앉아 매주 하루 3시간씩 열심히 공부했더랬다.

생판 모르고 살던 사람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경험도 참 새로웠다. 30대 초반인 나는 젊은 축이였다. 쉰줄의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새로운 꿈에 도전하기 위해 모임에 열심이셨다. '이쁜 아가씨...'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깨어진 대신, '나이 먹는다고 꿈을 버리면 그만큼 더 늦게 후회하겠구나.'하는 교훈을 얻었다.

그렇게 10주가 지나 마지막 모임을 마치고 뒷풀이를 했다. 이런저런 얘기 도중 어쩌다 내가 얘기의 주제가 되었다. "이 선생처럼 말 잘하는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봤다." "어쩌면 그렇게 조리있게 잘 하냐?" "배우고 싶다."는 등 예상 못한 칭찬들이 나왔다. 인사치레가 아니라 꽤나 진지하게 그것도 코앞에서 칭찬을 해주시는데, 살짝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역시'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실 처음 모인 날부터 '아, 이 모임은 나보다 연세 많으신 분들도 많으니, 너무 나서지 말고 조용히 지내자.'하고 다짐했더랬다. 실제로 9명이 모인 자리라 하고싶은 말이 마구 떠올라 입이 근질근질 해도, 잠시만 기다리면 누군가는 내가 하고싶던 이야기를 했다. '누가 말했냐'와 '누가 먼저 말했냐?'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 상대방에게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할 기회를 주어도 커뮤니케이션은 깔끔하게 이어진다.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나니 그 방법이 꽤나 괜찮았구나싶다. "많이 말하려고 하지 말고 많이 들으려고 노력하라!" 말 잘하는 확실한 비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