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입고 싶은 옷이 있었다. 입고 싶었다는 것은 입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왠지 더 입고 싶어지는 거다. 그것은 일종의 욕망이었다.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만으로도 자가증식이 가능했다. 가끔은 그 욕망 때문에 스스로 상처 입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허망할 뿐이라고 자위했다. 그러나 가끔은 허망하지만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입고 싶은 옷을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옷을 입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렸다. 그리고 한참 뒤 그 옷을 입고 나서는 왠지 그 옷에 맞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허망한 욕망이 현실로 이뤄진 기쁨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옷을 입기 위해 인내했던 것의 보상이었다.
입던 옷을 벗고 싶을 때가 있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입고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뭔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벗고 싶었던 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단지 싫은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거다. 가끔은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자위했다. 서러웠다. 하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어쨌든 난 그 옷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옷에 대해 이제까지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한참 뒤 나는 그 옷을 벗지 않고도 왠지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포기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옷을 벗기 위해 궁리했던 것의 보상이었다.
내가 입어야하는 옷과 버려야하는 옷이 무엇인지, 또 언제 갈아입어야하는지 간절하게 알고 싶지만 나는 자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맞지 않는 옷을 갖고싶어한다.
입던 옷을 벗고 싶을 때가 있었다. 너무나 익숙해서 입고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뭔가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벗고 싶었던 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였다. 단지 싫은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거다. 가끔은 벗어나지 못해 스스로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라고 자위했다. 서러웠다. 하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을 때도 있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어쨌든 난 그 옷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 옷에 대해 이제까지 몰랐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한참 뒤 나는 그 옷을 벗지 않고도 왠지 편안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포기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옷을 벗기 위해 궁리했던 것의 보상이었다.
내가 입어야하는 옷과 버려야하는 옷이 무엇인지, 또 언제 갈아입어야하는지 간절하게 알고 싶지만 나는 자주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맞지 않는 옷을 갖고싶어한다.

